[해외 영화 리뷰] 맨 프럼 어스 결말 포함 스포 리뷰 #반전_영화 #SF영화 #저예산_영화
10년 간 지방의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던 존 올드만은 어느 날 종신 계약 제안도 거절하고 떠나기로 한다. 동료들은 존에게 아쉬움을 토로하고 그를 위한 환송회를 마련한다. 환송회에서 동료들은 그가 떠나는 이유를 계속해서 묻고 존은 이에 폭탄 선언을 한다.
존은 본인이 선사시대부터 살아온 사람이고, 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왔다고 말한다.
동료들은 존의 말에 반박하지만, 논리정연한 그의 말에 점점 혼란스러워 한다. 완벽하게 존이 과거부터 존재했던 이라고 입증할 증거도, 그렇다고 아니라는 논파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몇몇 이들은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존을 사랑하는 샌디는 그를 어느 정도 믿는 눈치지만 다들 존의 이야기에 긴가민가한 상황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존이 과거에 부처의 제자이자 예수라 불린 이라는 것을 고백하면서 대화는 점점 긴박해진다. 결국 심리학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인 윌이 지금까지 고백이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말하라고 하고, 존은 말을 번복해서 거짓말이었다고 말을 바꾼다. 동료들은 화를 내지만 존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며 집을 떠난다.
하지만 샌디와 존이 대화하던 중 과거 존이 60년 전 즈음에 쓰던 이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윌은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는다. 과거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이름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와 개의 이름까지 아는 존을 보면 그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평소 심장이 좋지 않은 윌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충격 때문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존은 윌의 장례식에 돌아오기로 한다. 그리고 떠나는 존은 샌디에게 마음을 열고 둘은 함께 차를 타고 떠난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발칙한 메시지 그리고 반전
07년에 나온 이 영화를 알게 된 것은 사실 최근이다.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딱히 열심히 찾아 보는 사람은 아닌지라, 유튜브에서 이 영화 리뷰를 보고 흥미로운 마음에 구입해서 보게 되었다. 가격도 유튜브에서 구입하면 1,200원이다. 감독이 무료로 풀었는데, 왜 유료냐고 하는 반응도 있던데, 진짜 무료로 풀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를 찾다가 든 생각인데, 이게 한국식 표기가 '맨 프럼 어스'인지 '맨 프롬 어스'인지 좀 헷갈리긴 했다. 일단 포스터에 기재된 정식 명칭은 '맨 프럼 어스'이다.
영화 자체는 솔직히 약간 심심하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기발해서 좋은 영화였다고 본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존의 집 주변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 간다. 엄청난 사건도 없고, 엄청난 갈등도 없다. 하지만 묘한 긴장감이 유지되고 있으며, 심지어 그 안에 담겨 있는 주제가 SF라는 게 더 신기하다. 영화 리뷰 쪽에 댓글로 'SF는 상상력이다'라고 적어 놨던데 딱 그말이 맞는 영화라고 본다.
영화 안에 담겨 있는 발칙한 메시지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재미 요소라고 본다. 역사 속에서 실제 사건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하고, 각색하고, 이야기를 더하면서 지금의 종교가 된다. 만약 실제로 종교 속의 위인들이 현대에서 돌아다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존이 사실 예수라는 것을 고백하고 솔직한 심경을 고백하면서 부터 역사의 사실과 종교의 올바른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물론 이 부분은 다소 '발칙'할 수도 있고, '불경'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논박에 대해서 그냥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되는 반론을 에디스가 하면서 어느 정도 잘 풀어 냈다고 본다. 다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에디스가 좀 거슬릴 수도 있지만, 충분히 종교인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본다.
마지막에 윌이 존의 아들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은 상당히 짜릿한 반전이었다고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은 긴가민가하면서 영화를 보게 된다. 존의 말이 워낙 청산유수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는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란스러운 가운데, 윌을 통해 진실을 확정 지으면서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존의 말이 진실로 밝혀지면서 그의 종교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진실되게 와닿게 되었다. 물론 진실을 판단하는 것을 관객의 몫으로 넘기고 끝낼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메시지 전달 측면에서는 좀 더 나았다고 본다. 카타르시스도 느껴지고 말이다.